Home  >  낫티의 리뷰들  >  즐길거리 티여우


북부(이싼) 앙코르와트 보다 먼저 지어진 부리람의 힌두 사원인 무엉땀

관리자
2022-10-02
조회수 242

파눔룽에서 약 8킬로..그곳에 무엉땀이 있다.

 

태국의 부리람을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이 꼭 가보게 되는 파눔룽에서 가까운 그곳에 자야바르만 5세가 시바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어진 므엉땀 신전이 있다. 여기서 므엉땀의 뜻을 간단히 살펴 본다면 '낮은 도시'라는 뜻이다

우리가 많이 듣는 태국의 말중에 이런 므엉(도시)이 들어가는 말들은 또 있다. 므엉보란, 던므엉등등... 이 이름 처럼 므엉땀 신전은 산위에 지어진 파눔룽의 아래쪽 평지에 그리고 씨엠립을 향하는 방향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으니......

 

대략적으로 이 건축물을 만든 크메르족들의 왕국 역사를 간단히 살펴 본다면 최초 후난 시대(AD 68년~) 그리고 첸라 시대(AD 550~)를 거쳐 시작이 되는 본격적인 앙코르 제국(AD 802~)의 초기에 이곳은 지어진 건물이 되는데...

지금의 돌로 만들어진 그 수많은 앙코르 건축물들의 초기 작품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결국은 이곳을 만들어낸 그 노하우로 지금의 거대한 앙코르 와트의 찬란한 유산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 자야바르만 5세때 지어진 이 므엉땀은 그 뒤의 수야브라만 2세때 건설이 되어진 앙코르 와트의 건물들 보다 약 150 여년 정도가 앞서 지어졌고...파눔룽과 므엉땀은 그래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태국내의 크메르 유적들이 되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를 만든 그 사람들이 심심해서 여기다가 그 비슷한것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시면 큰 오산...^^  지금의 씨엡립의 앙코르 와트는 이렇게 지금의 이싼 지역들 부터 시작이 되어 남쪽으로 발전하며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니.....

 

물론 지금의 태국 사람들은 당연히 이 유적들이 태국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지만(앙코르 제국의 역사는 태국 역사의 일부라는 시각,이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를 그들의 소수 민족의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는 부분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유적들이 태국의 영토안으로 들어 가버려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앙코르의 후예들인 지금의 캄보디아 국민들은 과연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지금 국경에 맞닿은  유적중의 하나인 카오프라 위한을 두고 양국이 벌이고 있는 국경 분쟁은 양국의 그 복잡한 심리 상태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는듯 하다. 태국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약한 지금의 캄보디아 이지만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을 하나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서 과감하게(?) 거대한 태국을 향해 지금도 총알을 날린다..

불과 이곳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태국쪽에서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들을 들여 보내던 그런곳 이었는데...이 사건들이 있고 나서는 외국인들의 출입이 2010년 7월 현재 전면 금지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여기서 일반 여행객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두 나라의 관계를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면...그러면 왜 ..?  지금 앙코르 제국이 있던 그 이싼 지역들이  캄보디아가 아닌 태국의 영토이냐고?

 

자..

앙코르는 그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며 1,200년대 무렵까지 인도차이나 최고의 제국으로 발돋움을 하기에 이르게 되는데..그 시기에 태국땅에는 지금의 태국인들의 조상들인 수코타이 왕국이 들어서게 되고... 

그리고 이어지는 아유타야 제국... 그 아유타야 제국이 수코타이를 병합을 시키며 거대 세력으로 성장해서 결국엔 앙코르 제국을 무력으로 침공, 흡수하게 되는것이다. 그 강성한  아유타야 제국의 시발점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레수안 대왕이라는 인물인 것이고.... 그렇게 앙코르의 마지막인 앙코르 톰이 아유타야 제국에 함락이 된 시점이 1431년....

 

그 후 앙코르 제국의 크메르인들은 대거 지금의 캄보디아 수도가 있는 프놈펜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에 이르고 앙코르의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던 귀족들과  왕족,승려들은 그렇게 아유타야 제국으로 끌려가서 태국속에서 완전히 태국인으로 흡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찬란했던 앙코르의 그 문화는 그렇게 멸망을 한 뒤 정글속에 뭍혀져서 그 이어짐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던 것인데........지금도 태국인들이 앙코르 와트는 태국의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그 논리의 중심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있는것이다. 제국의 멸망..그리고 태국인으로 흡수된 크메르의 귀족들..그리고 왕족들....

 

그리고 난 후 인도차이나는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 시대로 들어가게 되고 유일하게 식민지 시대를 피해간 태국이 지금의 국경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백년 간의 긴 역사를 지배했던 서양 세력들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물러나고 그 후손들이 각각 독립을 하여 이루게 된 나라가 지금의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되었던 것이니....

 

자...

이 까지를 이해하시면 깊이있는 설명은 아니겠지만 대략적으로 캄보디아-라오스-태국의 관계를 이해를 하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실듯 하다...

근데 좀 웃긴게...지금 태국 이싼 남쪽 지역의 구성원의 대부분이 크메르족(캄보디아인)들인데...그들은 원류 조국인 캄보디아를 심증적으로 지지를 하지 않고 당연히 태국 국민으로써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이해하고 있으니....앙코르의 후손들이 멸망을 하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려서인 탓일까...? 우리도 일제 식민지 시대를 오래 겪었더라면 이들처럼 이렇게 역사관이 바뀌었을까...? 참으로 알수 없는 인도차이나 반도.....

 

우리는 과연 광개토 대왕비를 언제쯤이나 다시 찾아 올 수 있을까나...? 그냥 그렇게 영원히 중국에 주고 마는겨 ???

고구려는 발해는...? 하긴 지금 우리의 영토내에 들어와 있는 당연한 우리땅인 독도도 제대로 지킬까 말까 한 판국이니..원...ㅜㅜ::

 

우리도 몸속에 흐르는 피는 한국인인데..정신은 일본인들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듯... 그래서 올바른 역사를 새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꺼꾸로 돌린 민족 반역자들을 그 혈통을 끊어 단죄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께다... 지금도 한국엔 독립 투사의 자손들 보다는 이완용, 송병준의 자손들이 훨씬 더 부자이고 떵떵거리며 권력을 누리고 잘살고 있다고 하지...?

젠장할.....ㅜㅜ::

므엉땀은 이렇게 평지에 위치를 한다. 사진속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야산의 정상에 파눔룽이 있다.

한가로운 이싼의 정취들이 마음껏 느껴지는 이곳...

프라쌋 므엉땀(Mueang Tam)의 입구이다.

이 건축물은 힌두의 신인 시바신에게 바쳐진 성전이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므엉땀의 외곽 고푸라의 위용

1,000년의 시간을 견뎌왔지만 그 세밀한 문양들은 그때의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전통 크메르 양식의 건축물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섬세한 문양

외곽 고푸라를 지나서 들어서면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으로 둘러쌓인 본존 건물이 나오게 되는데..

그 양쪽으로는 연못(바라이)이 이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원래 사진속의 연못들엔 물이 차 있는데..낫티가 가는날은..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인부들이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이 담긴 아름다운 모습을 찍지는 못했음이다. 참고로 위의 사진속의 연못들은 힌두의 성지인 메루산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의미 한다고 한다.

그 신성한 바다의 바닥을 열심히 청소하는 그들....

이 연못은 이 신전의 4개 방면을 각각 에워 싸고 있다.

그리고 신들이 거주하는 메루산으로 들어서는 입구....

그 안에 드디어 신의 영역이 나오게 된다.

 

원래는 중앙의 주탑을 중심으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4개의 주변탑들이 둘러싼 모습인데...중앙의 주탑은 이미 무너져 내려서 간신히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세월의 그 무게를 감히 감당해 내기 힘들었던듯....

큰 기단위에 네개의 보조탑 그리고 중앙의 주탑의 양식... 이는 차후 태국의 건축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콕의 유명 사원중의 하나인 새벽사원과 비교를 하며 참조를 하시면 흥미가 있으실 것이다.

중앙의 주탑위에 올라 서 보았다... 그 옛날 낫티가 서 있는 이 지점의 주변으로는 이곳에 사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이곳을 향해 제를 올렸을 것이다. 말 그대로 낫티가 서 있는 현 위치는 1,000년전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 이었던 곳이었다. 그곳에 지금 낫티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문양들은 건물들에 비해서 그 보존도가 뛰어나다.

이 건물은 앙코르 성전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도서관이다. 그 옛날 이곳엔 힌두 의식을 준비하는 많은 경전과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을것으로 추측이 된다.

양쪽으로 하나씩 만들어져 있다.

보조탑 하나를 살펴 보자. 주탑 옆으로 총 4개의 보조탑이 있다.

힌두 스토리를 잘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저 섬세한 부조의 스토리 좀 댓글로 달아 주시길....^^

또 다른 도서관 건물..

다만 1,000여년이 흐른 지금엔 그 모든것이 그저 많이 쓸쓸해 보일 뿐... 시간이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치열했을 정치도 종교도.. 전쟁도..그리고 인간들도....

천년전의 그  화려한 존엄과 영화는 천년이 지난 지금엔 그저 ...도시락을 까먹으며 바닥을 청소하는 그들의 손길만이 필요할 뿐이니 말이다..

 

이런거를 보면..인간史는 참으로 덧 없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도 다들 왜 그리들 치열하게 살고 있는것일까...?

 

현대사회... 서울의 한복판에 어마 어마한 헌금을 거둬 들여서 지어진 그 많은 성전들도 먼 훗날엔 이곳처럼 이런 모습으로 남으려나...?

역사의 진리..그리고 똑같은 인간 모습의 싸이클들.........

그 똑같은 모습을 늘 반복해 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들...

그리고 원래 종교의 참 본연의 임무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역사속에서 늘상 권력에 기생하려는 종교들....

신은 늘 똑같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그렇게 인간의 사회속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연출해 낸다.

그래서 너희들은 신이 될수 없는 인간들일 뿐이라고..

0